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61
한자 濟原驛
영어공식명칭 Jewon Horse-switching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폐지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제원역 폐지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濟原面) 제원리(濟原里)에 있었던 조선 시대 공무를 담당했던 역참.

[개설]

제원역은 제원도(濟原道) 찰방(察訪)에 속한 역이다. 현재의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 200번지이며, 지금은 제원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제원역은 제원도의 중심이 되는 역으로 금산에서 용담[현재 전라북도 진안군]의 달계역(達溪驛), 무주[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의 소천역(所川驛), 진안[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의 단령역(丹嶺驛), 고산[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의 옥포역(玉包驛) 등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제원역은 고려 시대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속한 역으로 나타나며, 1896년(고종 33)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관련 기록]

제원역은 1530년(중종 30)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군의 동쪽 5리에 있다고 했으며, 1656년(효종 7)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정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에서는 군의 동쪽 10리에 있다고 하였다. 『제원역지(濟原驛誌)』에 따르면 제원역에는 상등마(上等馬) 2마리, 중등마(中等馬) 3마리, 하등마(下等馬) 5마리가 있었다. 1872년(고종 9)에 간행된 『호남읍지』에 따르면 제원역의 역마가 10필이고 마호가 10명이라 했으며, 영조 연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895년(고종 32)에 편찬된 『제원역지성책(濟原驛誌成冊)』에 따르면 역리가 10명, 역노가 6명, 역비가 3명이라 하였다. 제원역의 모습은 1895년(고종 32) 편찬된 『호남역지』에 잘 나타난다.

[변천]

제원역은 제원도를 관할하는 찰방역으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제원도에는 제원역[현재 충청남도 금산군], 달계역[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소천역[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단령역[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이 속했으며, 1457년(세조 3) 역로를 정비할 때 옥포역[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이 추가되어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변화 없이 운영되었다. 제원역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관아, 동헌(東軒), 창고, 장청(將廳), 관재(官齋), 마당(馬堂) 등의 건물이 있었다. 관아 남쪽에는 선해주점(船海酒店)과 대천점(大川店)이 있었다. 제원역은 갑오개혁을 계기로 근대적인 통신 제도가 도입되면서 1896년 1월 폐지되었다.

[위치]

제원역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 200번지에 있었다.

[현황]

현재 제원역 터 주변에는 말을 씻기는 장소를 의미하는 세마지(洗馬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글귀가 있으며, 제원역찰방을 역임했던 찰방비 9기가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금산군의 역으로서 전라좌도 동북부 산악 구간을 관할하며 제원도로 연결되는 당시의 육로 교통 발달상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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