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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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州 |
영어공식명칭 | Geumju |
이칭/별칭 | 금산,진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문경호 |
[정의]
1305년부터 1413년까지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에 설치된 고려 시대 지방 행정구역.
[개설]
고려가 건국된 후에는 진례현으로 강등하고, 현령관을 두었으나 1305년(충렬왕 31)에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시켰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의 금산은 주현인 진례현이 부리현(富利縣)·청거현(淸渠縣)·주계현(朱溪縣)·무풍현(茂豊縣)·진동현(珍同縣) 등 5개 현을 속현(屬縣)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 간섭기인 1305년(충렬왕 31)에 진례현 출신의 김신(金侁)이 원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여 요양행성(遼陽行省)의 참정(參政)으로 있으면서 공을 세웠으므로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의 파견 여부와 지방관의 관품에 따라 읍격의 위상이 달라졌다. 고려 태조 이래 7품관인 현령관이 파견되었던 진례현은 김신의 활약에 힘입어 읍격이 상승하여 5품관인 지사(知事)가 파견되는 주(州)로 승진하게 된 것이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2 전라도 진례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금산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전라도 금산군 건치연혁, 『여지도서(輿地圖書)』 전라도 금산군읍지 건치연혁,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 건치연혁 등에 관련 기록이 전한다.
[내용]
금산이 금주로 승격된 이유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좀 더 상세히 남아있다. “고려 시대에 읍사람 중에 김신(金侁)이 원(元)나라에 벼슬하여 본국에 대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고향에 돌아온 뒤에 충렬왕이 이를 가상하게 생각하고 금주(錦州)로 승격시켜 금의환향한 영광을 드러나게 해 주었으니, 이로부터 드디어 이름 있는 군이 되었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3개의 속현을 거느리고 있었던 진례현이 『고려사』가 편찬되는 시점에 5개의 속현을 거느리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사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금주는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에 읍의 규모에 따라 읍호를 개정할 때 금산군으로 개편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려 후기에는 군현의 규모나 인구와 관계없이 원에서 승진한 사람, 원의 고위 관료들로부터 총애를 받거나 왕을 모시고 가서 공을 세운 사람들의 고향이나 외가의 읍격을 승격시켜주는 경우가 있었다. 금주 또한 김신의 활동이 금산군을 금주로 승격시키는 데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