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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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進禮郡 |
영어공식명칭 | Jillye-gun |
이칭/별칭 | 진내군,진잉을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강유나 |
제정 시기/일시 | 75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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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305년![]() |
개정 시기/일시 | 1413년![]() |
관할 지역 | 진례군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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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편제된 통일 신라 시대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진례군은 통일 신라 시대 금산 지역 관할을 위해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 지방 통치 체제인 주·군·현제(州·郡·縣制)에 따라 진례군은 이성현(伊城縣), 청거현(淸渠縣), 단천현(丹川縣) 총 3개의 영현을 거느렸다. 현재 금산군 금산읍 일대로 비정된다.
[제정 경위 및 목적]
통일 신라 시대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 통치 체제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금산 지역에는 완산주 하에 진례군이 설치되었다. 진례군 밑으로는 3개의 영현이 편제되었다. 이성현, 청거현, 단천현이 진례군의 영현에 속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36 잡지에 따르면, “진례군(進禮郡)은 본래 백제 진잉을군(進仍乙郡)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영현(領縣)이 셋이다. 이성현(伊城縣)은 본래 백제 두시이현(豆尸伊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부리현(富利縣)이다. 청거현(淸渠縣)은 본래 백제 물거현(勿居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도 그대로 쓴다. 단천현(丹川縣)은 본래 백제 적천현(赤川縣)으로,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는데, 지금의 주계현(朱溪縣)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지리지 권제11 지리 2에는 “본래 백제의 진내군(進乃郡)[진잉을현(進仍乙縣)이라고도 함]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진례군(進禮郡)으로 고쳤으나 고려에 들어 현령관으로 강등시켰다. 충렬왕 31년(1305)에, 이 고을 사람 김신(金侁)이 원나라에 벼슬해 요양행성(遼陽行省)의 참정(參政)이 되어 나라에 공이 있다 하여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시켰다. 속현이 5개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금산군읍지』, 『대동지지』 등에서도 진례군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통치 체제는 주·군·현제로 전국을 9개 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군과 현을 편제하였다. 이에 따라 금산 지역에도 군현이 편제되었는데, 바로 진례군이다.
진례군은 오늘날 금산 지역의 금산읍 일대로 비정된다. 진례군의 영현인 이성현은 오늘날 금산 지역의 부리면 일대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부남면 일대로 비정된다. 진례군의 또다른 영현 청거현과 단천현은 각각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일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주읍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이를 볼 때, 오늘날 금산 지역의 행정 구역은 통일 신라 시대 행정 구역과 다소 다름을 알 수 있다.
[변천]
통일 신라 시대 진례군은 백제 시대 진잉을군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진례군으로 개칭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 진례군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 진례현(進禮縣)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1305년(충렬왕 31), 고을 사람 김신(金侁)이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게 되자 진례현을 금주군(錦州郡)으로 승격시키고 김신을 지금주사(知錦州事)에 임명하였다. 1413년(태종 13), 금주군은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의의와 평가]
문헌에 남아있는 기록을 토대로 하여 고대 금산 지역에 편제된 지방 통치 체제와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