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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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aengsangbawi Rock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산4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탁한명 |
전구간 | 행상바위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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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행상바위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산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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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바위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봉황천 우안에 있는 바위.
[개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용동[하금3리]의 용동교 하류 300m 지점에 위치한다. 행상은 사람의 시체를 실어서 묘지까지 나르는 도구를 의미한다.
[명칭 유래]
신라 시대 같은 마을에 무력이 강했던 박가와 책 읽기를 좋아했던 최가, 그리고 을녀란 여인이 살고 있었다. 박가와 최가는 둘 다 을녀를 사랑하였고, 이들의 삼각관계는 마을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최가가 왕의 부름을 받아 부근 고을의 원님으로 부임하게 되자 을녀는 최가와의 혼인을 약속하게 되었다. 뒤이어 무공을 세우고 마을에 돌아온 박가는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최가를 찾아가 죽이게 되었다. 최가의 시신을 확인한 을녀는 마을을 떠나 외진 곳에서 박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수련을 거듭하였고, 석 달 만에 박가를 유인하여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당시 박가는 신라에 공훈을 세운 무인이었던지라, 신라에서는 을녀를 수배하여 찾아다녔다. 당시 을녀는 행상바위 부근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으나, 신라군에 발각되어 쫓기게 되었다. 군사들과 을녀가 대치하는 상황이 되자 강물에서 용이 내려와 군사를 물리쳤다. 살아남은 을녀는 그곳을 떠나 중이 되었으나, 매년 최가의 기일에 행상바위에 나타나 추모를 지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에는 행상바위에서 상여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금산군 남이면 하금리 일대는 중생대 백암기에 관입한 석영 반암이 주로 분포하는 곳으로, 하천 주변에는 제4기 충적층이 분포한다. 행상바위가 있는 지역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분포하는 옥천층군의 마전리층이 분포하는데 주된 암석은 석회암이다. 석회암은 수직으로 깨어지거나 물에 녹는 성질이 있어 하천 변에 급경사를 가진 단애가 발달한다. 하천 변에 발달한 단애를 지형학에서는 하식애라고 부른다. 행상바위에 대한 묘사 중 “위쪽은 검은색, 가운데는 붉은색, 아래쪽으로 가면서 푸른 이끼에 감싸여 푸르게 보인다.”라는 설명이 있는데, 이는 석회암이 기반암에서 떨어져 나갈 때, 신선한 면이 나타나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
[현황]
용동교 남쪽 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적인 형상을 잘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