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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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두레로 논을 매거나 이동할 때 치는 농악.
[개설]
논매기는 농사일 가운데 가장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특히 두레의 논매기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까닭에 더욱 힘이 들었다. 이러한 작업에서 두레꾼들이 지치지 않게 풍물을 쳐서 흥을 돋우었으니, 이른바 두레풍장이다.
[연원]
두레풍장은 17~18세기 두레의 성립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마을마다 농기와 풍물을 갖추고, 매년 두레로 논을 맬 때는 두레풍장으로 농사일의 노고를 달래고자 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두레풍물의 악기는 마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금산군 금산읍 양지리 두레의 경우 기치(旗幟)는 농기와 영기가 있다. 농기는 일명 ‘큰기’ 또는 ‘국기’로 불리었다. 풍물은 상쇠·부쇠, 징, 장구, 북, 벅구 등으로 편성되었다.
[놀이 방법]
집결 신호는 징을 치는 것이다. 마을의 공터에 두레꾼들이 모이면 한바탕 풍물을 쳐서 두레가 났음을 온 마을에 알린다. 일터로 향할 때는 영기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농기와 풍물패가 그 뒤를 따른다. 행진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 시에 흥겹게 길군악[외마치질굿]을 울린다. 두레꾼들은 농기를 세워 놓고 논매기에 들어간다. 논을 매는 현장에는 풍물패도 안으로 들어가 맨 앞에 서서 농악을 친다. 또 소리와 농악이 어우러져 두레꾼들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두레풍장은 걸립농악과 함께 금산농악의 뿌리이다. 금산의 두레풍장은 연합송계에서 주관하는 ‘초장길닦기’의 풍물싸움·농기싸움으로 이어져 나무꾼들이 하루를 즐기는 축제로 꽃을 피웠다. 그것은 금산농악이 20세기 중후반 중흥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현황]
두레풍장은 1960년대 후반 두레의 소멸과 함께 단절되었으나 그 전통은 금산농악으로 계승되어 연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