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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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輔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윤희 |
출생 시기/일시 | 18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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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이보순 금산청년회 자선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이보순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공의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이보순 수산병원 개업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이보순 금산면 면협의회 의원 당선 |
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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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학지 | 경성의학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
활동지 | 수산병원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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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수산병원 의사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사.
[활동 사항]
이보순은 189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으며,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대 초 충청남도 도립병원에서 2년간 근무하였고, 1924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공의(公醫)로 부임하였다. 1925년 금산군 빈민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1928년에는 금산군 금산읍에 수산병원(壽山病院)을 개업하였다. 이보순은 의사로서의 활동 외에 1920년부터 금산청년회 자선부장을 지내면서 지역 활동에도 활발히 나섰다. 1922년부터 금산운수주식회사 감사, 금산식산조합 평의원, 금산금융조합 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29년에는 금산면 면협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논의에 지지를 보내기 위해 1940년에 흥아신춘(興亞新春)을 축하하는 광고를 『매일신보』에 게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