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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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海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병택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청년 운동가.
[활동 사항]
정해인(鄭海仁)은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출신이다. 1916년 판임문관시험 합격 후, 금산군 판임관견습을 거쳐 진안군서기를 역임하였다. 1906년 9월에 공포된 문관임용령에서는 관리를 칙임관, 주임관, 판임관 등으로 구분하였다. 칙임관은 대한제국 황제가 직접 임명하는 관리였으며, 주임관은 주무대신이 황제의 재가를 받아 임명하는 관리였다. 판임관은 주무대신이 전권으로 임명하는 관리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러한 구분은 유지되었으며, 판임문관시험에 합격한 자를 판임관으로 삼는 절차가 마련된 바 있다.
정해인은 1919년 3월 23일 진안군서기를 사임하였고, 1920년 금산청년회 창립 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일본 법정대학 법과를 졸업하였으며, 금산청년회가 주관하는 강연회에 연사로 등장하는 등 지역 청년 운동에 앞장섰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 따르면 정해인은 법정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상태에서 금산청년회 활동을 병행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정해인은 해방 후에도 금산에 거주하면서 1950년 제2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