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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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昌永 |
이칭/별칭 | 긴코 쇼에이[金光昌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윤희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활동 사항]
김창영은 1890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고, 창씨명은 긴코 쇼에이[金光昌永]이다. 1912년 관립평양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강계공립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1915년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학에서 유학하고 귀국하여 공북면장을 역임하였다. 조선독립단원과 연관되어 만주로 군자금을 송출하다가 적발된 후, 1921년 경찰관으로 특별 채용되었다. 강원도와 전라북도에서 경시로 재직하다가 1933년 금산군수로 부임하였다. 금산농회 회장, 금산군 미곡협동통제조합 조합장, 금산인삼동업조합 조합장 등을 역임하였고, 1937년 금산군수에서 면직되었다.
1937년 만주국 치안부 사무관으로 임명된 후 항일 운동 세력의 귀순, 체포, 사살 등에 가담하였고, 항일 빨치산과의 교전에 참가하였으며, 김일성 귀순 공작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1943년 전라남도청 참여관 및 산업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민정관, 경성부부윤을 지내다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기소되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1952년 충청북도 영동중학교 교사로 잠시 재직하였으며, 1967년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