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99
한자 吉元進
영어공식명칭 Gil Wonjin
이칭/별칭 고천(高薦),송고(松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문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384년연표보기 - 길원진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해평(海平)
대표 관직|경력 지금주사(知錦州事)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지방관인 지금주사를 지낸 고려 후기 문신.

[개설]

길원진의 본관은 해평(海平)[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자(字)는 고천(高薦), 호(號)는 송고(松皐)이다. 보성의 대판(大判), 지금주사(知錦州事)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고려 말 삼은 중의 한 명인 야은 길재의 아버지이다.

[가계]

길원진의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에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을 지낸 길시우(吉時遇)이며, 아버지는 산원동정(散員同正) 길보(吉甫)이다. 부인은 토산(兎山) 김씨(金氏)로,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증된 김희적(金希迪)의 딸이다.

[활동 사항]

해평 길씨는 본래 경상도 선산 봉계(鳳溪)에 살며 해평현의 향리를 역임하였는데, 길원진의 할아버지 길시우가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오면서 개경에 살게 되었다. 조부와 부친의 관력(官歷)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의 가문은 고관(高官)을 배출하지 못한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으며, 경제적 형편도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원진은 1360년(공민왕 9)에 보성의 대판(大判)에 임명되었다가 1363년(공민왕 12)에 보성대판에서 해임되어 개경으로 돌아왔다. 1368년(공민왕 17)에 부인 김씨를 두고 다시 노영(盧英)의 딸과 혼인하였다. 1383년(우왕 9)에 지금주사(知錦州事)가 되어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지역에 부임하였으나 이듬해인 1384년(우왕 10)에 갑자기 부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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