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90
한자 義城 丁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 시조 정덕성(丁德盛)
입향 시조 정현(丁炫)

[정의]

정덕성을 도시조로 하고, 정영손을 중시조로 하며, 정현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연원]

의성 정씨(義城 丁氏)의 도시조는 당(唐)나라 말기 대승상을 지낸 정덕성(丁德盛)이다. 신라 땅인 압해도[현 전라남도 신안군]에 유배되었다가 정착하여 의성 정씨의 도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의성 정씨는 나주 정씨(羅州丁氏)·영광 정씨(靈光丁氏)·창원 정씨(昌原丁氏)로 분관되었는데, 이 중 의성 정씨는 영광 정씨에서 분관하였고, 압해 정씨는 의성 정씨에서 분관하였다.

의성 정씨는 고려조에서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조선 건국 때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며 의성군(義城君)에 책봉된 정영손(丁令孫)[1327~1398]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의성 정씨의 주요 인물로는 조선 시대에 무과에 급제한 정함(丁凾), 정사형(丁士亨)을 비롯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한 정현(丁炫) 등이 있다.

[입향 경위]

의성 정씨 금산군 입향조인 정현의성군 정영손의 손자로 호는 안당(按唐)이다. 아버지는 봉승낭장(奉承郎將) 증좌찬성을 지낸 정맹위(丁孟威)이다.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에 따르면, 정현은 1429년(세종 11)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하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인해 금산에 부처되었다. 이에 금성산(錦城山)에 단(壇)을 설치하고 매일 지성으로 단종(端宗)의 복위를 축원하며 영월을 향하여 통곡하였는데, 1457년(세조 3년) 단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자진(自盡)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이곳에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한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거주하는 의성 정씨는 6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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