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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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淳昌 薛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재 |
세거|집성지 | 순창 설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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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설호진(薛虎珍) |
입향 시조 | 설숙기(薛叔基) |
[정의]
설호진을 시조로 하고, 설숙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순창 설씨(淳昌 薛氏) 금산군 입향조는 설계조(薛繼祖)[1418~1486]의 고손자인 설숙기(薛叔基)이다. 설숙기가 충청북도 옥천에서 처향인 의성 정씨(義城 丁氏)의 집성촌인 지금의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설계조의 묘는 원래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에 있었는데, 증손자 설우범(薛禹範)이 선무원종공신에 책록(策祿)되면서 증조할아버지 설계조가 좌찬성 옥천 부원군(玉川 府院君)에 추증되고 안양이라 시호가 내려지자 후손들이 설계조의 묘를 내부리로 이장하였다고 전한다.
[연원]
순창 설씨 시조인 설호진은 박혁거세(朴赫居世) 탄생 설화에 나오는 6촌 촌장의 한 사람으로 명활산 고야촌 사람으로 다른 5촌 촌장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6촌이 6부로 개칭되고 명활산 고야촌이 습비부(習比部)가 되면서 ‘설(薛)’을 하사받았다. 이후 설호진의 14세손 설곡(薛嚳)이 습비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 36세손 설자승은 1124년(인종 2) 예부시랑으로 순화백(淳化伯)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고쳤다. 이에 순창 설씨는 경주가 원적이 되고 순창이 본적이 되었다. 46세손 설계조는 1443년(세종 25) 무과에 급제하였고, 사복소윤(司僕少尹) 등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설계조의 증손자 설우범이 1595년(선조 28) 병마절도사로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오른 공로로 좌찬성 옥천 부원군에 추증되었다.
[입향 경위]
설숙기가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처향인 의성 정씨의 집성촌인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로 이주하면서 순창 설씨 금산군 입향조가 되었다. 설숙기의 큰아들 설순충(薛純忠)은 금산의 향족인 남원 양씨(南原 楊氏)를 아내로 맞이하고, 둘째 아들 설순효(薛純孝)는 상산 김씨(商山 金氏)에게 장가를 가며 금산에 뿌리를 내렸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살고 있는 순창 설씨는 45명이다.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에 순창 설씨 집성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