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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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商山 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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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93년![]() |
세거|집성지 | 상산 김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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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김수(金需) |
입향 시조 | 김자정(金自精) |
[정의]
김수를 시조로 하고, 김자정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상산 김씨(商山 金氏) 금산군 입향조는 노은(老隱) 김자정(金自精)[1630~1693]이다. 김자정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로 입향한 후 후손들이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용화리에 상산 김씨 집성촌이 있다.
[연원]
상산 김씨 시조는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인 김수(金需)이다. 김수의 5세손인 김비궁(金非躬)이 상산 부원군, 9세손인 김일(金鎰)이 상락군(上洛君), 10세손인 김록(金祿)이 상성군(商城君)에 잇달아 봉해지고, 그곳에서 누대에 걸쳐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김수를 시조로 하고 상산(商山)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 경위]
상산 김씨 금산군 입향조는 김자정이다. 병자호란 이후인 1650~16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잦은 전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하자 김자정이 새로운 거처를 찾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로 입향하여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살고 있는 상산 김씨는 376명이다.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 상산 김씨 집성촌이 있다. 금산 상산 김씨 집안에서는 1410년(태종 10년)에 김지(金摯)가 받은 왕지(王旨) 2매가 전한다. 내용은 김지를 통정대부예조우참의보문각직제학세자우보덕(通政大夫禮曺右參議寶文閣直提學世子右補德)으로, 9월에 가선대부검교한성윤(嘉善大夫檢校漢城尹)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관련 인물]
김자정의 7세손 김윤식(金潤植)[1870~1950]은 자가 중범(仲範), 호(號)는 용암(龍巖)인데, 빈민을 구휼하고, 토지를 마을에 기증하였으며, 금산향교(錦山鄕校)의 전교(典敎)를 맡아 봉사(奉祀)와 유도(儒道)의 선양에 힘썼다. 또한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있는 종용사(從容祠)의 보수에도 공이 컸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