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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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道 |
영어공식명칭 | Dong-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유나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을 지나가는 백제 시대의 동쪽 교통로.
[개설]
『일본서기』에 의하면, 487년(동성왕 9), 임나[가야]의 나기타갑배가 계책을 사용하여 대산성을 쌓아 백제의 동쪽 길[東道]을 막고. 군량을 운반하는 나루를 차단하였다고 한다. 이에 백제는 영군 고이해와 내두 막고해를 파견하여 대산성에서 전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 사료의 내용에 등장하는 동도는 지명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대개 ‘동쪽 길’을 뜻하는 명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동도는 백제와 임나 지역을 연결하는 백제 동쪽 방면의 교통로로서 금산 지역을 거쳐 지나갔던 것으로 파악된다.
[명칭 유래]
동도가 기록된 사료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동도는 백제를 기준으로 한 ‘동쪽의 길’ , 즉 백제의 동쪽 교통로를 뜻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5세기 후반, 백제의 동도는 금산을 거쳐 진안을 통해 임나와 연결되는 내륙교통로였다. 특히 임나가 대산성을 쌓아 이 동도를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대산성을 공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이 전투를 통해 대산성을 장악하였다. 대산성은 백제에서 임나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하며, 백제는 대산성 전투 이후 동도를 통해 섬진강 유역으로 진출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산성의 위치를 금산군 제원면의 천내리 산성으로 비정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동도의 교통로를 상정한 견해도 있다. 대산성에서 동도를 막고, 군량을 운반하는 나루를 끊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백제의 동도는 금강 본류와 만나고 나루터가 있는 금산군 제원면 일원을 지나간 것으로 본다.
[관련 기록]
『일본서기』 권15, 현종천황 3년조에 “…임나(任那)의 좌로(左魯) 나기타갑배(那奇他甲背) 등이 계책을 써서 백제(百濟)의 적막이해(適莫爾解)를 이림(爾林)에서 죽이고[이림(爾林)은 고려(高麗)의 땅이다.] 대산성(帶山城)을 쌓아 동쪽 길[동도(東道)]을 막고 지켰으며, 군량을 운반하는 나루를 끊어 군대를 굶주려 고생하도록 하였다. 백제(百濟)의 왕이 크게 화가 나, 영군(領軍) 고이해(古爾解), 내두(內頭) 막고해(莫古解) 등을 보내 무리를 거느리고 대산성(帶山城)에 나아가 공격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