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44
한자 帶山城
영어공식명칭 Daesan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유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 문헌 『일본서기』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으로 비정되기도 하는 가야의 지명.

[개설]

백제는 한성 함락 이후, 금강 이남 지역에 대한 지방 경략을 본격화하였다. 특히 임나로 통하는 길목인 이림과 대산성을 장악하여 섬진강 유역에 대한 진출로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487년(동성왕 9), 대산성에서는 백제와 임나의 충돌이 벌어졌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나에서 고구려와 통교하며 삼한의 왕이 되고자 하였던 기생반숙녜는 임나의 나기타갑배라는 인물의 계책을 동원하였다. 계책에 따라 이림에서 백제의 적막이해를 죽이고 대산성을 쌓아 동쪽 길을 막았으므로 백제왕이 대산성을 공격하여 이들을 평정하였다는 것이다.

[명칭 유래]

『일본서기』에서만 단 1회 확인되고 『삼국사기』 등 국내 사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지명이므로 정확한 유래를 말하기 어렵다.

[형성 및 변천]

『일본서기』에서만 단 1회 확인되고 『삼국사기』 등 국내 사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지명이므로 그 형성과 변천을 알 수 없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대산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대산성의 위치는 이림과 함께 동일 지역권으로 파악하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인면,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보다 구체적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월계산성 등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림은 고구려의 땅이라는 기록을 고려할 때, 당시 고구려가 전북특별자치도 일원까지 진출하였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에 대산성의 위치는 백제와 고구려의 접경 지역이면서 임나와 관련된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따라서 충청북도 괴산군, 충청북도 청주시, 대전광역시 및 충청북도 옥천군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동쪽의 길을 막았다거나 나루를 차단하였다는 기록을 볼 때, 하천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청주 및 청원이나 대전 및 옥천 지역일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5세기 후반 가라국[임나]이 백제의 영역인 진안까지 진출하여 영역을 확장하였을 가능성과 백제의 동쪽 교통로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대산성의 위치를 충청북도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의 중간 지점인 충청남도 금산으로 보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이 견해는 보다 구체적으로 대산성의 위치를 금산군 제원면 일대의 천내리 산성으로 비정하였다.

[관련 기록]

『일본서기』 권15 현종천황 3년조에 “이 해에 기생반숙녜(紀生磐宿禰)가 임나(任那)에 근거하여 고려와 통교하고 장차 서쪽으로 삼한(三韓)의 왕(王)이 되고자 하여 관부(官府)를 정비하고 신성(神聖)이라 자칭했다. 임나(任那)의 좌로(左魯)·나기타갑배(那奇他甲背) 등이 계책을 써서 백제(百濟)의 적막이해(適莫爾解)를 이림(爾林)에서 죽이고[이림(爾林)은 고려(高麗)의 땅이다.] 대산성(帶山城)을 쌓아 동쪽 길을 막고 지켰으며, 군량을 운반하는 나루를 끊어 군대를 굶주려 고생하도록 하였다. 백제(百濟)의 왕이 크게 화가 나, 영군(領軍) 고이해(古爾解)·내두(內頭) 막고해(莫古解) 등을 보내 무리를 거느리고 대산성(帶山城)에 나아가 공격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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