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088
한자 安宅-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초|시월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집안에 모신 여러 신들에게 가정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굿.

[개설]

안택굿은 말 그대로 집안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굿이다. 굿에서의 치성 대상은 집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가신(家神)이다. 구체적으로 조왕, 터주, 성주와 같은 중심 가신을 대상으로 굿을 한다. 곧 이들의 위력을 칭송하는 한편, 그 같은 초월 능력으로 해당 가정의 평안과 번영을 이루어 달라고 축원한다. 무당에 따라서는 가신 외에도 칠성, 제석, 조상, 삼신과 같은 신명을 불러 위로하고 가정의 길운을 빌기도 한다.

금산 지역 안택굿의 시행 시기는 정초나 시월이다. 정초의 경우 정월 보름 이내의 길일을 정하여 굿을 하고 시월의 경우 역시 보름 이전의 날을 택일한다. 이렇게 날이 정해지면 해당 가정의 주부는 굿 시행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한다. 집안을 살피고 특히 부엌과 장독대 안방 등을 깨끗이 청소한다. 황토를 준비해 대문 앞길 좌우에 세 무더기씩 놓는 예도 발견된다. 또 사전에 제물로 올릴 제수를 구입해 온다.

금산 지역에서 안택굿을 하는 무당은 대개 짝을 이루어 굿을 진행한다. 남녀가 짝을 이루어 굿을 이끄는데 보통 여자는 무당이고 남자는 법사(法師)인 사례가 많다. 과거 점쟁이, 경객으로 불리던 독경사를 오늘날에는 법사라고 부른다. 이들은 굿을 행하는 당일 오전에 기주(祈主)의 집에 방문해 저녁 무렵까지 굿판을 준비한다. 그리고 저녁부터 자정 넘어까지 안택굿을 이어나간다.

[연원 및 변천]

안택굿이 언제부터 유래하였는지는 정확치 않다. 조선 후기 세시풍속지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에는 “시월 상달에 무당을 불러 성주신을 맞이한다.”고 적고 있다. 또 이때 “떡과 과일을 차려 놓고 집안이 편안하기를 기도한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안택굿이 조선 후기에 이미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차]

금산 지역 안택굿은 저녁 무렵 시작된다. 무당과 법사는 굿을 진행하기 전에 신간(神竿), 살대, 지화 등의 무구(巫具)를 만든다. 또 굿당을 장식하기 위해 한지를 오려 소품[설위설경]을 제작한다. 이러한 무대 장치 설위설경(設位說經)은 귀신을 사로잡거나 축출하기 위한 도구[무구]이다.

금산 지역 안택굿은 조왕굿, 터주굿, 성주굿으로 구성된다. 굿의 목적에 따라 조상굿이나 제석굿이 덧붙기도 한다. 어떻든 각각의 굿판을 ‘자리 또는 석’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곧 안택굿은 최소 세 자리로 구성된 굿이다. 그리고 각각의 한 자리는 1~2시간 정도 지속된다. 앉은굿 형태로 독경(讀經)을 구송하며 진행되기에 한 사람이 한 자리를 마치면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충청도의 독경을 바탕으로 한 굿은 두 명 이상이 한 조를 이루어 교대로 굿판을 이끈다.

저녁 무렵이 되면 가정의 주부가 미리 준비해 놓은 제물을 부뚜막에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한지나 밥보자기로 덮어 놓는다. 이어 무당이나 법사가 들어와 굿을 진행한다. 맨 먼저 행하는 것이 부정풀이이다. 부정풀이는 굿판을 정화하는 한편 악귀로부터 무당과 기주를 보호하기 위한 축원이다. 이후 본격적인 굿에 들어간다. 곧 덮어 놓은 밥보자기를 거두어 내고 조왕신을 대상으로 굿을 한다. 그리고 장독대로 이동하여 터주굿을 하고 다시 안방으로 이동하여 성주굿을 수행한다. 이때 무당이나 법사는 각 처소의 가신을 대상으로 한 조왕경, 터주경[당산경], 성주경을 구송하면서 굿을 진행한다. 그러면 옆에 자리한 기주는 각각의 가신을 향하여 큰절을 반복하거나 비손을 하며 소원을 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굿을 진행한 뒤 마지막 과정으로 내전을 한다. 내전이란 굿판에 모여든 잡귀나 잡신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먹이는 과정이다. 이 내전을 끝으로 안택굿을 마치는데 금산 지역의 경우 보통 자정을 넘겨 굿을 마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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