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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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山 衙仁里 社稷壇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규완 |
소재지 | 금산 아인리 사직단 터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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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사직단 터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직단 터.
[개설]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은 중앙에서 지방까지 모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사직단은 읍치(邑治)의 기본 구성 요소 중 하나였다. 태종 대부터 주현(州縣)에 사직단이 설치되기 시작하였으며, 제사는 수령이 주도하도록 규정되었다. 지방의 사직단 제례 시행은 민간의 음사를 대체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조선은 이를 이용해 국가의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재정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직단과 향교 등의 지역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기존의 불사(佛寺)와 신사(神社)의 재원을 재편하여 사직단과 향교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다수 발견된다. 금산군 지역 또한 사직단 터 인근에서 고려 시대의 사찰 흔적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발굴과 조사가 필요하다. 금산군의 사직단은 『여지도서(輿地圖書)』, 『호남지도(湖南地圖)』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천]
금산 아인리 사직단은 홍살문(紅살門)과 신실, 석축단 등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직단이 있던 마을은 사직마을, 사직말 등으로 불리다가 상지동, 상짓말 등으로 불리게 되었고, 현재는 상짓말로 불리고 있다.
[위치]
금산 아인리 사직단 터는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 있다. 사직단은 대부분 성밖 서쪽에 위치하였으므로, 금산군의 사직단 또한 금산읍의 서쪽인 금산산업고등학교 뒷산 금산동중학교 서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2023년 현재 금산 아인리 사직단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직단 터는 공터이며, 텃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의 지방 사직단은 읍치의 서쪽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금산 아인리 사직단 터는 조선 시대 금산 지역의 읍치 구조를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