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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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臺山記 |
영어공식명칭 | Seodaesangi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연숙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57년 - 송상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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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23년 - 송상기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60년 - 「서대산기」 『옥오재집』에 수록 |
배경 지역 | 서대산 -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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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기행문 |
작가 | 송상기 |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송상기가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서대산을 오르고 쓴 기행 산문.
[개설]
「서대산기(西臺山記)」는 조선 후기 문신 송상기(宋相琦)[1657~1723]가 서대산을 오르고 쓴 기행문이다. 송상기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 『옥오재집(玉吾齋集)』에 수록되었다.
[구성]
『옥오재집』13권 기9편 중에 유람기 「서대산기」가 수록되어 있다. 『옥오재집』에 수록된 산문 중에 많은 소차(疏箚) 90편에 달하고 서 7편, 기 9편, 제발 3편이 있다. 조선 시대에 유행한 풍조와 달리 섬세하고 구체적인 필체로 묘사하였다.
[내용]
여행기는 문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서대산기」 내용 대부분은 산행의 과정을 집중해서 묘사하고 있다. 산행의 시작부터 정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풍경과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의 일부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기이한 봉우리와 우뚝한 절벽이 하늘을 찌르고 허공에 닿을 듯한데, 바위의 색깔은 매우 희었다. 그 형상이 마치 창을 늘어세운 것과도 같고 병풍을 펼친 것과도 같고 성난 사자와도 같고 승천하는 이무기와 같아 그 모습을 이루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른쪽 언저리에 石筍바위가 있는데 다른 봉우리에 기대지 않고 곧게 수백 길이나 솟아 있었다. [중략] 내가 보건대, 세상에 특이한 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난 돌을 하나 구해다가 가산으로 삼아, 그것을 화분 위에다 올려놓고 으스대면서 신기하다 자랑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우물 안 개구리가 자기를 크게 여기는 것과 같은 꼴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지금 내가 본 것은 또한 한 시대의 가장 웅대한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특징]
조선 시대 유행하던 문화 풍조는 많은 문인들이 집에서 그림을 보면서 탐방하는 와유(臥遊)와 가산(假山)이 있는데, 고전적 회화 이론에 입각하여 산수를 직접 보지 않고 화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누워서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자신의 꿈 내용을 안견(安堅)에게 그리도록 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있다. 완성된 후에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림을 감상하고 자신이 제서를 쓰고 20여 명이 연이어 찬문을 썼다.
16세기 이후 상업을 통해 경제가 발달하며 변화된 사회 속에서 유람 문화가 등장하였다. 이와 관련해 이상화된 경치를 그리는 관념 산수화에서 경치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 역시 18세기에 유행하였다. 송상기는 이러한 흐름에 따라 유람기를 많이 남겼다. 「서대산기」를 비롯해 「여마곡사기」, 「여난용산기」, 「여북한산기」 등의 글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관념보다 실천을 중시한 점에서 조선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띤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