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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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炭峴 |
이칭/별칭 | 침현(沈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유나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으로 비정되는 백제 시대 신라와의 요충지였던 고개.
[개설]
탄현은 백제 동성왕대 처음 등장한 지명으로 신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탄현에 목책을 세웠다고 한다. 백제 의자왕대 충신 성충은 다른 나라의 군사가 육로를 통해 탄현을 넘어오지 못하게 막을 것을 간언하였다. 흥수 또한 나당연합군이 백제로 진격해올 때, 특히 신라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성문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다. 이처럼 탄현은 신라 또는 가야에서 백제의 수도 공주 및 부여로 통하는 육로상의 요충지였다.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제시되었는데, 오늘날 대개 금산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명칭 유래]
‘탄현’ 이라는 지명은 금산 지역 외에 충청남도 공주시, 충청남도 홍성군, 충청북도 음성군, 대전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등지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숯고개’의 한자어이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탄현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대전광역시 동구와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경계에 있는 식장산 마도령을 탄현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과 금산군 사이의 탄치로 보는 견해도 있고, 이 견해를 수용하되 그 범위를 좁혀 완주군 운주면 신복리와 삼거리 사이의 쑥고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다른 견해는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의 숯고개로 보거나 금산군 진산면의 방현리와 행정리 사이의 방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탄현의 위치는 사료의 기록대로 성충의 간언 내용을 고려하고, 탄현의 이칭이 침현인 것을 근거로 하여 지리적으로 강의 상류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체로 탄현의 위치는 오늘날 금산군 진산면 일대로 보는 편이다. 이외에도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사이의 묵현,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 방면 등으로 비정된 견해가 있기도 하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26 백제본기4 동성왕 23년 7월조에 “탄현(炭峴)에 목책을 세워 신라에 대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28 백제본기6 의자왕 20년조에서도 탄현에 관한 기록이 확인된다. “…‘백강(白江)[기벌포(伎伐浦)라고도 한다.]과 탄현(炭峴)[침현(沈峴)이라고도 한다.]은 우리나라의 요충지로서, …당나라 군사가 백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 사람이 탄현을 지나지 못하게 하면서 대왕께서 성문을 굳게 닫고 단단하게 지키며 그들의 물자와 군량이 떨어지고 군사들이 피곤해질 때를 기다린 뒤에 분발하여 공격하면 이길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흥수가 간언 하였다. 그러나 대신들은 흥수의 말을 믿지 않고 ‘당나라 군사를 백강으로 들어오게 하여 강물 흐름에 따라 배를 나란히 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 군사를 탄현으로 올라오게 하여 좁은 길 때문에 말을 나란히 몰 수 없게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 백제왕에게 전하였고, 백제왕은 이를 옳다고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에는 “…다른 나라의 군사가 온다면 육로로는 탄현(炭峴)[침현(沈峴)이라고도 하는데 백제의 요충지이다]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라고 성충의 간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