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원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46
한자 豆尸原嶽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지도보기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유나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으로 비정되는 백제부흥운동 관련 지명.

[개설]

두시원악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이후,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난 지역 중의 하나이다.

백제 유민들은 곳곳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백제의 좌평이었던 정무 역시 부흥운동군을 꾸려 두시원악에서 신라군 및 당군을 상대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명칭 유래]

정확한 유래를 확인하기 어렵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단 1회에 걸쳐 나오는 지명으로 형성 및 변천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두시원악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먼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으로 비정되거나 보다 자세히 청양군 정산면의 두릉윤성[계봉산성]을 지목하기도 한다. 두시원악을 두릉윤성으로 보는 견해는 두시원의 옛 발음을 ‘둘원’으로 보아 ‘둘원’과 ‘두릉’의 유사함에서 근거를 찾았다.

반면에 백제 시대 두시이현과 음운의 유사성을 토대로 두시원악두시이현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두시이현의 경우, 오늘날 금산군 부리면 일대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부남면 일대로 비정된다. 이에 따라 금산군 부리면 일대로 보는 견해와 무주군 부남면 일대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금산군 부리면 일대로 보는 견해는 ‘두시이’는 ‘지형이 높은 성이 두 개 있다’는 뜻으로 금산군 부리면의 갈선산에 2개의 옛 성터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한편 두시원악금산읍과 무주읍 사이를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금강 좌안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여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일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관련 기록]

660년 7월 백제 도성이었던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한 직후 곧바로 백제인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두시원악에서 저항한 기록은 바로 다음 달인 660년 8월의 기사에서, “백제의 남은 적병이 … 또 좌평(佐平) 정무(正武)가 무리를 모아서 두시원악(豆尸原嶽)에 진을 치고 당나라와 신라 사람들을 노략질하였다.”라고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 8월조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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